PRESS

HOME PRESS

[노트르담2021] “17년째 그랭구와르 役… 노트르담은 나의 반쪽” - 조선일보

관리자 │ 2021-11-09

HIT

271

“17년째 그랭구와르 役… 노트르담은 나의 반쪽”

佛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주인공 리샤르 샤레스트… 2005년부터 한국 흥행 이끌어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시인이자 해설자 그랭구와르를 연기하는 리샤르 샤레스트. 

그는 “책의 첫 페이지처럼 관객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첫 노래 ‘대성당들의 시대’를 부른다”고 했다. 

/마스트엔터테인먼트


2019년 12월 중국 우한. 배우 리샤르 샤레스트(51·캐나다)는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를 공연하다 괴(怪)바이러스 출현 소식을 들었다. 코로나 사태의 최전방에 있었던 셈이다. 중국 당국이 “공공장소에선 마스크를 쓰라”고 결정한 건 2020년 1월 23일. 그는 상하이에서 공연 중이었다.

“내가 맡은 시인이자 해설자 그랭구와르는 가장 먼저 등장해 ‘대성당들의 시대’를 부른다. 이 뮤지컬이 처음 들려주는 목소리와 같다. 그런데 ‘마스크를 쓴 관객들’에게 압도됐다. 2년 뒤에도 이렇게 마스크를 쓰고 있을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당연하다고 여기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는 시간이었다.”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가 코로나를 뚫고 서울(17일부터 세종문화회관)에 짐을 푼다. 샤레스트는 2005년 한국 초연부터 그랭구와르로 1000회 넘게 공연하며 흥행을 이끈 주역. 지난 5일 광화문에서 만난 이 배우는 “서울에서 대성공을 거둔 뒤 일본·중국 등 아시아 시장이 열렸기 때문에 한국 관객은 ‘노트르담 드 파리’의 오늘이 있게 한 은인”이라고 말했다.


꿈에서라도 작가 빅토르 위고를 만날 수 있다면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리샤르 샤레스트는 "내게 마스터클래스를 해달라고 요청하고 싶다"며 

"인터넷도 없고 정보가 제한적이던 시대에 사람들의 미묘한 감정을 포착하고 

글로 정확히 표현한 그 재주를 배우고 싶다"고 답했다. /박상훈 기자


빅토르 위고가 쓴 ‘노트르담의 꼽추’가 원작으로 1482년 노트르담 성당에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샤레스트는 “실제 노트르담 성당도 내 삶의 일부가 된 기분이다. 2019년 큰 화재가 났을 땐 이 뮤지컬과 그랭구와르를 좋아하는 팬들이 마치 내 집이 불탄 것처럼 걱정해주며 위로의 메시지를 보냈다”고 했다.

그는 2005년 한국 초연 이후 그랭구와르로 전 세계를 투어 중이다. 사실 1999년 첫 오디션엔 프롤로 신부에 지원했고 ‘목소리 톤과 음역대는 괜찮은데 외모가 근위대장 페뷔스’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렇게 페뷔스를 연기하다 그랭구와르에 점점 매력을 느꼈다. 위트와 재미를 더하고 싶어 용기를 내 배역 변경을 요청했고 받아들여졌다.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배역 변화로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뭘까. 샤레스트는 “얻은 게 훨씬 많다. 그랭구와르는 ‘한 발은 무대, 한 발은 객석’에 두고 관객을 이야기로 안내하며 에스메랄다?클로팽 등 여러 인물과 소통한다”며 “내가 좋아하는 노래 ‘아름답다’를 부를 수 없는 건 아쉽다”고 했다. 콰지모도엔 관심이 없는지 묻자 “허스키한 목소리와 젊은 패기가 없으니 과욕”이라며 웃었다.


'노트르담 드 파리'의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왼쪽)와 그랭구와르.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면서 그는 불안과 스트레스에 자주 시달렸다. “카드값과 공과금을 내야 하는데 극장이 봉쇄됐으니 아주 힘든 시간이었다. 이 사회에서 문화 예술과 내 자리가 어디쯤 있는지 자각하는 기회가 됐다.” 그는 “그럼에도 ‘영혼의 양식’을 그리워하는 팬이 많았고 ‘노트르담 드 파리’라는 브랜드 덕에 희망을 가지고 기다릴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 뮤지컬은 대사 없이 노래(54곡)와 춤, 애크러배틱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거대한 종(鍾) 3개에 무용수들이 매달려 흔들리는 장면은 잔상이 길다. 샤레스트는 “배우는 노래와 연기만 하고 댄서는 춤만 추는 프랑스 뮤지컬은 영미권 뮤지컬과 문법이 다르다”며 “이 작품을 영어로 노래하면 멜로디와 가사 사이에 틈이 벌어져 맛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한국 관객은 비극적 사랑 이야기라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도 했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내한 공연. 세계 23국에서 1500만명이 본 흥행작이다.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콰지모도는 순수한 사랑을 하지만 외모 때문에 그것을 잘 드러내지 못한다. 프롤로의 사랑은 내부에 쌓인 욕정이 폭발하는 형태다. 페뷔스의 사랑은 상투적이다. 진정한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모든 걸 주되 상대방에게 기대하지 않는 것. 하지만 인간이기에 그런 사랑을 하긴 어렵다.”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거의(presque)’라고 했다. “어떤 목표에 가까이 갔지만 완전히 다다르진 않은 순간을 좋아한다. 멈춰 있지 않고 어떤 방향과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완벽한 그랭구와르? ‘거의’ 도달했지만 아직 배울 게 많다(웃음).”

그랭구와르로 17년째. 실제 삶도 영향을 받았을까. “물론이다. 자존감을 얻었다. 거절당할 수 있었지만 그 배역에 도전했고 성취했으니까. 지금은 전엔 상상도 못했던 일까지 하고 있다. 내가 대본을 쓴 뮤지컬 ‘랭보’가 내년에 중국에서 프랑스어로 공연된다. 그랭구와르가 내게 준 선물이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배우 리샤르 샤레스트. /박상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