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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뱅뮤지엄] 난 개츠비 맨션에 초대된 손님… 영화 속 주인공 같네

관리자 │ 2020-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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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참여 공연 '위대한 개츠비'… 英 라이선스 뮤지컬 국내 초연
공연장을 개츠비 맨션으로 설정… 파티에서 관객·배우 함께 춤춰
"진짜 친구가 된 듯한 기분 들어"

"여러분 같이 춤춰요, 앞으로, 뒤로, 킥킥(kick, kick)!"

찰스턴 재즈가 흘러나오자 배우들이 옆에 선 관객 손목을 붙들고 찰스턴 댄스(1920년대 미국에서 유행한 춤)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손목을 뿌리치고 도망가는 이도, 엉거주춤 발을 뻗는 이도 있었다. 어색한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배우들은 "앞으로, 뒤로!"를 외치며 관객들을 쫓아다녔다. 노래가 끝날 무렵, 관객들이 다 같이 앞으로 뒤로 발을 뻗고 있었다.

21일 서울 중구 그레뱅 뮤지엄에서 개막한 이머시브 공연 '위대한 개츠비' 중 한 장면. 배우들이 노래를 부르고, 관객들끼리 어깨에 손을 올리고 이들 주위를 도는 '기차 놀이'를 하고 있다.
21일 서울 중구 그레뱅 뮤지엄에서 개막한 이머시브 공연 '위대한 개츠비' 중 한 장면. 배우들이 노래를 부르고, 관객들끼리 어깨에 손을 올리고 이들 주위를 도는 '기차 놀이'를 하고 있다. 개막 공연에선 "재밌다" "신선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보는'게 아니라 '즐기는' 공연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표값을 건질 수 있다. /마스트엔터테인먼트
관객이 적극적으로 작품에 참여하는 이머시브(immersive) 공연 '위대한 개츠비'가 21일 서울 초연의 막을 열었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원작으로 한 이 공연은 2015년 영국의 폐업한 술집 건물에서 시작돼 런던에서 장기 흥행 중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창작극으로 선보이고 있지만, '위대한 개츠비'처럼 국내에 라이선스 공연으로 들여온 것은 처음이다. 서울 시청 옆 그레뱅 뮤지엄에서 공연한다.

◇개츠비도, 데이지도 내 친구처럼

관객은 공연 시작 전부터 개츠비의 파티에 발을 들여놓는다. 건물 1층에 마련된 바에서 입장을 기다릴 때 1920년대 유행한 플래퍼 룩('신여성'을 뜻하는 말로 H라인 원피스와 머리 장식이 대표적)을 입은 여성과 중절모를 쓴 남성이 돌아다니며 관객에게 말을 건다. 이들을 따라 2층 공연장으로 올라가면 홀과 무대가 펼쳐지고 한쪽 옆엔 샴페인과 칵테일을 만드는 바가 있다. 극의 중심 줄거리는 이 중앙 무대에서 진행되고, 보조 줄거리는 무대 주변에 딸린 방에서 펼쳐진다. 예를 들어 개츠비의 첫 파티나 개츠비와 데이지가 만나는 중요한 장면은 중앙 무대에서 펼쳐졌다.

공연이 시작되자 관객 사이에서 배우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파티 장면부터 배우들은 관객의 참여를 본격적으로 유도했다. 배우와 관객들이 함께 춤을 춘 다음, 개츠비가 스물 남짓한 관객을 집무실로 꾸며놓은 방으로 몰고 들어갔다. 그는 술을 권하며 직업을 묻고 투자를 권유했다. 같은 시각, 다른 방에서도 배우들이 관객과 함께 공연을 진행했다.

초반엔 말 걸어오는 배우들을 슬슬 피하는 관객들도 1부 중간쯤 되면 공연을 즐기기 시작한다. 불륜 관계인 머틀 윌슨과 톰 뷰캐넌의 작은 파티에 갔을 때는 '진실 혹은 도전' 게임을 했다. 이날 '도전'을 선택한 관객은 탁자 위에서 머틀과 섹시 댄스를 췄다.

◇마치 영화 속에 들어간 듯

이야기가 절정으로 치닫는 2부에서는 1부만큼 방에서 이뤄지는 장면이 많지 않다. 1부에서 등장인물들과 교감을 한 덕분에 중앙 무대에서 벌어지는 내용에 감정이입을 많이 할 수 있다. 이윤희(29)씨는 "친구 둘과 함께 개츠비 방에 따라 들어가서 그의 과거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데이지와 만나는 장면을 보는데 눈물이 났다. 내가 마치 영화 속에 들어가 개츠비의 친구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여러 방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이야기는 알 수 없는 것이 묘미이자 단점이다. 런던에서 이 공연을 여러 번 관람한 뮤지컬 작가 박해림에 따르면, 세 번쯤 보면 중앙 무대와 각 방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 경험할 수 있다. 줄거리를 신경 쓰지 않고 맘 편히 돌아다니려면 원작을 읽고 가거나, 최소한 영화라도 보고 가는 게 좋다. 임현정(39)씨는 "이머시브 공연이 낯설어 오늘은 충분히 못 즐긴 것 같다"며 "한 번 더 관람하면서 오늘 경험하지 못한 다른 방에도 가보고 싶다"고 했다. 내년 2월 28일까지.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2/24/2019122400120.html

조선일보 변희원기자 

입력 2019.12.24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