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맨그룹] 공연, 미술과 ‘한몸’이 되다

관리자 │ 2008-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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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와 영역의 파괴가 현대 예술의 특징이라지만 공연과 미술은 쉽사리 ‘한몸’이 되지
못했다. 3차원의 공간에서 시간을 따라가는 공연 예술과 평면을 통해 정지된 순간을
표현하는 미술은 그 본질적 측면에서 늘 충돌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내 입성 ‘블루맨 그룹’ ‘네비아’ 시각적 요소 더해
블루맨 그룹, 등장인물 온몸에 페인트 칠
네비아, 실루엣 연기로 신비감 연출


그러나 2008년 여름, 한국에 입성한 두 해외 공연은 이런 고정관념을 철저히 무너뜨린다.
10일부터 세종문화회관에서 막이 오르는 ‘블루맨 그룹’(Blueman Group)과 다음달 9일
역시 같은 공연장에서 시작하는 ‘네비아’(Nebbia)는 다이나믹한 공연에 시각적 요소를
가미시켜 대중 공연의 격을 한단계 끌어올리고 있다.

#블루맨 그룹-모던 아트로 문명 사회를 조롱하다

‘블루맨 그룹’은 신난다. 파란색 페인트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칠한 세 명의 등장 인물은
엉뚱하고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공연 내내 좌충우돌한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두들기고,
이는 라이브 밴드의 음악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져 객석의 심박수를 정점으로 이끈다.
특별한 스토리는 없다. 단지 각각의 에피소드는 하나의 주제 속에 다양하게 변주되며
관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블루맨 그룹’의 기원은 20여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대 후반, 세계 예술의 메카
를 자처하던 미국 뉴욕에 엄혹한 검열바람이 불어닥쳤다. 포르노를 연상시키는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사진전이 계기였다.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위기를 맞게되자 뉴욕의 젊은
예술가들은 저항 운동을 펼쳤다. 매트 골드만·크리스 윙크·필 스탠턴 세 명도 그중 하나
였다. 이들은 머리를 삭발한 채 온 몸에 파란색을 칠하고 ‘80년대를 위한 장례식’이란 이름
의 행위 예술을 선보였다. 클럽 바·무허가 술집·파티 등 뉴욕의 뒷골목을 전전하며 게릴라
방식으로 진행되던 행위 예술은 3년뒤 뉴욕 오프-브로드웨이의 한 소극장에서 정식 공연을
시작했다. 이 공연이 무려 17년째 순항 중인 것이다.

출발부터 난해한 현대 미술의 흐름을 수혈받은 ‘블루맨 그룹’은 전세계 1200만명의 관객을
끌어모은 현재까지도 그 뿌리를 유지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사람 몸으로 칠하기’다. 이
는 누보 레알리슴의 거장으로 불리는 이브 클라인에게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이브 클라인
은 페인트를 칠한 여자들의 벗은 몸을 그대로 캔버스에 굴려 그림을 그리는 등 팝아트·미니멀
리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또한 공연에선 드럼을 두들기면 그 안에 가득 들어있던
물감이 사방으로 번져 나가 형형색색의 모양을 연출하는 장면이 나오는 데 이는 ‘액션페인팅’
을 표방한 잭슨 폴락의 표현주의를 닮아 있기도 하다. ‘블루맨 그룹’을 창시한 매트 골드만은
“미술에 대해 대중들이 생각하는 심각함과 학구적인 접근에 반기를 들고, 가볍고 친근하게
다가가려고 했다”며 “흩뿌려지는 잉크, 관객의 페인팅 등은 모던 아트에 생명을 불어넣는
새로운 움직임”이라고 말했다. 02-541-6235

#네비아-테크닉보다 미장센이다

‘네비아’는 서커스다. 태양의 서커스로 유명한 캐나다의 또 다른 서커스 그룹인 ‘서크 엘루아즈’
가 만들었다. 자연히 고난도의 덤블링과 아찔한 곡예,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묘기 등이 충만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허를 찌른다. 이 작품은 실로 장면 하나하나가 스틸 컷처럼 아련하다.

‘네비아’는 이탈리아어로 ‘안개’란 뜻이다. 자연히 공연엔 몽환적 분위기가 넘쳐난다. 주인공인
‘곤잘로’는 안개가 자욱하게 내린 어느날, 길을 잃는다. 세상과 유리된 공간에서 그는 유년기의
추억을 떠올린다. 정육점 딸인 루시아, 이젠 생사를 알지 못하는 죽마고우 스테판 등이 그의
망막 속에 등장한다.


희미해진 과거의 기억은 새삼스레 아름답기 마련. 그래서 극은 분절화된 기억을 따라 옴니버스

형식을 띤다. 어느 봄날, 남몰래 사랑을 속삭였던 갈대밭은 100개의 접시가 얹혀진 대나무

막대기로 탈바꿈돼 무대위를 장식한다. 시원스레 내리는 장대비는 1만2000여개의 코르크 마개

로 표현되며, 한번쯤 하늘의 별을 따보고 싶다는 헛된 꿈은 아찔한 곡예로 형상화된다.

이처럼 작품은 각각의 미장센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배우들의 분장을 최소화시켰고, 의상도 흑

과 백으로만 구성해 시선 분산을 막았다. 또한 여러겹의 불투명한 천 뒤에서 펼치는 실루엣 연기

는 신비감을, 다양한 빛깔의 조명은 공간의 깊이감을 살리는 요소로 작용했다. 연출자인 다니엘

핀지 파스카는 “난 묘기를 보여주고 싶지 않다. 몽롱한 꿈으로의 여행, 혹은 특이한 정신 세계로

의 탐험 등을 이끌 수 있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1577-5266

최민우 기자





입력 2008.06.09 01:26   수정 2008.06.09 02:41

출처: [중앙일보] https://news.joins.com/article/3175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