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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pus Editor 고은빛 | 사진협조 마스트엔터테인먼트>레오나르도 다빈치 이름에 떠오르는 건 ‘모나리자’일 것이다. 우리는 다빈치를 미술가로 알고 있지만, 그는 과학자, 발명 가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이번 전시는 그의 숨겨진 면모를 볼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다. 다빈치전을 들어서면 제일 먼저 모나리자가 그 백만 불짜리 웃음을 선사할 줄 알았지만 정작 관람객들을 마중 나온 건 크게 붙여진 그의 노트였다. 노트는 다빈치가 아이디어를 얻을 때마다 적어놓았던 것인데, 이것을 토대로 엔지니어들과 장인들이 모형으로 제작했다고 한다. 미술가 다빈치의 놀라운 아이디어는 과연 어떠했을까. 비행기의 시작은 라이트 형제? No! 생각해 낸 것은 다빈치다. 그는 비행기의 구조를 문서화하면서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이단 취급 을 받기도 했다. 다빈치의 아이디어가 비행기 탄생의 초석이 된 셈이다. 많은 모형 중 가장 큰 구조물인 헬리콥터가 눈에 띈다. 린넨 천, 철사, 날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린넨 천은 나선형의 축에 씌여 있다. 네 사람이 축을 움직이면 작동하며, 린넨 천이 돌게 되어 상승하는 힘이 생성된 다. 예수가 유다를 염두에 두고 12제자들에게 한 말이다. 이 상황을 자세하게 묘사한 그림이 다빈치 의 ‘최후의 만찬’이다. 12제자들의 감정표현과 행동을 자세하게 담기 위해, 다빈치는 밀라노에서 사람들을 연구했다. 그림에 지나치게 몰두해 밥 먹는 걸 잊어버릴 정도였다고 한다. 다빈치의 천재적인 재능의 원동력은 바로 이러한 지나친 몰입으로부터 나오는 건 아닐까. 기 때문. 우선 예수 뒤편으로 창문을 그려 자연스러운 후광을 유도해냈고, 원근법을 사용해 방을 확대했다. 템페라 기법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계란이나 아교질 ?벌꿀 ?무화과나무의 수액 등을 용매로 사용해서 색채가루와 섞어 물감을 만들어 그린 것이다. 하지만, 이 기법은 작품의 급속한 손상을 가져왔고, 1999년에 와서야 적외선 반사경 장비를 통해 복구가 완료되었다. 평화주의자의 이중적 선택 라면 간디처럼 소금을 들고 행진하거나 조용히 살아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러나 그는 제자들을 양성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다. 전쟁기계는 돈벌이가 되는 수단으로 어쩔 수 없이 개발했을지도 모른다. 더 설득적인 얘기는 다빈치는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더 강력한 무기 개발을 통해 다른 나라와의 전쟁을 피하자는 것이 평화주의자였던 그의 선택이었다. 에서 나타나는 표면의 차이까지 세세하게 알 수 있다. 물론 그림은 원본이 아니고 사진촬영을 통한 복제품이다. 그래도 원본보다 더 오래 구경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는 20피트 뒤에서 두꺼운 방탄유리 안에 들어있는 그림을 10분이라는 시간 안에서만 관람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전쟁기념관에서는 원 없이 볼 수 있다. 당신이 모르고 있던 모나리자의 비밀을 속속 알게 될 테니 이것만 알고 집에 가도 이번 전시회의 알짜배기를 보았다고 할 수 있다. 수록 잘못되었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다빈치를 미술가로서만 알고 있는 사람은 그를 더 만나봐 야 한다. 호기심으로 세상을 바라본 그의 다방면적 재능과 아이디어가 현대 제품에 어떻게 투영되어 있는지를 알게 되면 다빈치의 매력을 더 깊이있게 느낄 것이다. 기사입력 2011-04-09 11:01 출처: [헤럴드경제]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10408000064&md=20120422162255_BL |